공지사항 보도자료
제 목 |   제2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
작성자 |   관리자   (heretwo@postech.ac.kr)
작성일 |   2006년 10월 01일
첨부파일 1 |  
제2회과학문화심포지엄개최결과보고.hwp

 

제2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


□ 개  요

   - 일    시 : 2006년 9월 15일 (금) 16:00~18:30

   - 장    소 :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컨벤션센터 동백실

   - 주    제 : 문-이과 구분의 문제점, 그 역사와 현주소

   - 진행순서 : 참가자 등록, 개회식, 환영사, 제1부 주제발표 및 토론, 제2부 주제발표 및 토론, 폐회식 등

   - 주요내용 : 우리나라의 문-이과 구분의 실태와 그로부터 발생한 문제점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교육학적 고찰

   - 주    최 : 과학문화연구센터

   - 후    원 : 과학문화재단

   - 참석규모 : 각 분야 교수, 과실연 관계자, 학생 등 50여명


□ 발표내용

  【제1부】전근대시기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관계 및 그 변화

              사 회 : 조인래 (서울대 철학과 교수)

              발 표 : 임종태 (서울대 화학부, 과학사및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토 론 :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구만옥 (경희대 사학과 교수)


   ○ 내용요약

      1. 서론

 *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이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점의 하나로, 인문학을 포함하는 문화와 과학기술의 심각한 단절 현상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 한국적 상황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징후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특히 우리 중등교육의 文科 理科 구분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서, 단순히 교육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에 과학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지탱하고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 조선시기의 지적 지형에서는 오늘날의 문과/이과, 문화/과학의 단절의 유래로 볼 만한 현상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도리어 자연세계, 인간, 정치, 윤리 등의 분야를 관통하는 지식의 연속체가 존재했음을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과학과 문화의 현격한 단절은 20세기 이후 근대적 지식이 우리 사회에 도입되는 독특한 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2. 조선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위치

 * 조선 사회에서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세기 말 이전에는 오늘날의 과학과 문화, 이과와 문과 사이의 구분에 대응하는 지식 및 활동 사이의 단절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 시대 지식의 지형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과 문화, 그리고 자연 세계에 관한 탐구 사이의 매끄러운 연결이다.

 * 조선시대 사람들의 관념에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와 ‘자연’의 엄밀한 구획이 존재하지 않았다.

     => 전통시대의 지식인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여러 영역들이 서로 유  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사이에는 유기적 대응과 감응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 이러한 ‘연속적’이며 ‘유기체적인’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오늘날과 같은 과학과 인문사회과학 사이의 구분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고대로부터 천문, 律呂, 지리, 의학, 儀禮, 역사, 經學 각각에 관한 전문적 지식이 누적되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지식 분야들의 통일성에 관한 믿음이 근본적으로 도전받았던 적은 없었다.

     => 조선 세종대의 문물정비 사업이나 이른바 영정조 대의 르네상스 때 활약했던 다재다능한 인물들은, 마치 유럽 르네상스 지식인들과 견줄만한 지식의 폭과 활력을 보여주었다.


3. 19세기 후반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1) 한말 - 전통적 지식 체계의 약화 또는 붕괴

* 서구의 근대천문학 및 세계지리 지식, 서구의 기술적 진보에 관한 정보들이 󰡔한성순보󰡕 등의 매체를 통해 지식 사회에 확산되었으며, 중국을 통해 서구의 전기전신, 화학, 기계제작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1880년대 초 개화정부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른바 갑신개화파로 불리던 몇몇 급진적 인물을 제외한다면, 당시 조선정부의 관료들의 합의된 관점은 오늘날 우리가 보통 ‘東道西器論’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이는 보통 유교적 사회질서와 그를 뒷받침하는 유교 성리학의 핵심을 유지하면서 서구의 유용한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으로 요약된다.

* 1880년 이후 20여 년의 기간은 전통적인 지식의 지형이 서서히 붕괴해가고 그에 대신하여 근대적 요소들이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그러한 변화가 외부의 폭력적 개입이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귀결되었을 것인지 우리는 확인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1910년 어느 날 한국은 근대적인 일본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그에 따라 식민지 조선 지역은 하루아침에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일구어 온 근대적 제도, 학술, 문화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편입되었다.


2) 일제시기: 과학과 인문학의 불균형한 성장

*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과학과 문화의 단절 현상 또는 그 토대가 일제 식민지시기에 갖추어 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시기, 특히 1920-30년대에 인문사회과학, 과학기술 등을 포함한 한국의 근대 학계가 등장했고, 이들에 의해 형성된 지식의 지형은 해방 이후에 까지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 당연한 말이지만,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의 지적 지형에는 일본의 교육제도, 근대적 학술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일본 지식인들이 근대 학문을 분류하고 명명한 것들이 대개는 한국 지식인들에게도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 문과와 이과의 구분도 일본에서 유래한 것이 확실하다. 1877년 도쿄대학은 법학부, 문학부, 이학부의 체제로 출범했으며, 이학부 내에는 자연과학과 공학의 여러 분야들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형성된 문리과 구분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었으며, 그것이 식민지 조선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리과 구분과 폭넓게는 과학과 문화 사이 단절의 직접적 원인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어렵다.

*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요인은, 식민지 시기 한국인들이 일군 지적 지형에서 과학기술과 다른 분야 사이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1920년을 기점으로 근대적 문학, 역사학, 언어학, 사회과학이 신문과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폭발적으로 등장하고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히 전개된 데 비해, 과학기술 분야로의 진출과 활동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요컨대 1920년대 이후의 소위 ‘문화운동’에서 과학기술은 주류의 영역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한국인 지식사회 전체에서 과학기술을 대변할 전문가 집단이 뚜렷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 한국인으로서 이공계 분야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약 400명 정도였으며, 그 중에서 이후 과학기술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했다.

* 당시에 형성된 과학기술자들 중 일부는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의 문화적 지적 흐름에 적극 참여하려는 노력을 전개했다. 김용관, 박길룡 등 경성고등공업학교 출신자들이 전개했던 과학대중화 운동이나 박물학을 ‘조선학’의 한 분야로 정립하려 했던 석주명의 시도가 그러한 예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지닌 ‘주변적’ 지위 또는 인문학과 과학의 불균형한 지형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3) 20세기 후반: 과학과 문화의 단절

* 이러한 상황은 해방 이후, 1960-70년대를 거치며 고급 과학기술자 집단이 대규모로 형성된 이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이 형성된 과학자 집단과 다른 지식인 집단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진 감이 있다.

*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 시기 과학자 사회가 박정희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 하에 형성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개발과 자주국방의 토대로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한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차관을 재원으로 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과학원, 국방과학연구소를 비롯한 일련의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 기관을 건설했다. 이들 기관들은 서울의 홍릉, 그리고 이후 대덕이라는, 기존 대학 사회를 포함하여 외부 사회부터 사회문화적으로 고립된 공간에 배치되었다. 성공적으로 창출된 현대적 과학기술의 공간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근대화 사업의 혁혁한 성과의 하나로 내외에 선전되었다.

* 문제는 그 공간의 바깥 사회, 특히 소위 ‘在野’로 대표되는 지식인 사회는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방식의 근대화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대항적 지향을 추구한 이들 ‘재야’ 집단은 종교인, 문학인, 예술인, 인문사회과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물론 그곳에서 과학기술자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일제 시기 일부의 과학기술자들이 당시의 민족주의 및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이를 통해 형성된 과학기술과 ‘在野’ 사이의 문화적 간극은, 오늘날 과학기술계 원로들과 재야 출신의 정치가들이 1970년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회고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나는 여기서 재야가 추구했던 가치를 옹호하거나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향유했던 과학자 사회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 어떤 점에서는 ‘과학’을 결여한 재야 지식인들의 ‘지성’이 얼마나 건강할 수 있었는지의 문제도 이제는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학과 문화 사이의 간극이 이때 심화되었고, 그것이 1970년대의 ‘재야’와 그 정치적 문화적 후손들이 사회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최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결론적으로 1970년대 형성된 한국 현대 과학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무관심은 바로 그 집단을 형성시킨 독특한 역사적 조건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를 조선후기에 형성된 ‘중인의식’에서 그 역사적 기원을 찾는 것은 그리 적절치 않아 보인다. ‘중인의식’이라는 말이 오늘날 과학기술자들이 지닌 독특한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과거의 선례에서 선택한 유비적 표현일 수는 있어도, 그 둘 사이에 역사적 인과관계를 설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유구한 전통을 지닌다고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면 그 유래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 사회의 과학과 문화의 단절 현상도 그러한 사례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인데, 왜냐하면 그 유래가 우리에게 가까운 과거에 있다면, 그 해결책도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토론 1 : 문중양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 문이과 문제는 국가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 따라서 국가에서 어떻게 교육을 펼쳤고 조선시대 과학기술 정책이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도 더욱 이뤄져야 한다.


   ○ 토론 2 : 구만옥 (경희대 사학과 교수)

       * 문이과 구분으로 인해 일반인들이 과학에 무관심이 생긴 것에는 동의한다.

       * 두 문화의 간극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심한지, 다른 나라 간극의 양상이 어떤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제2주제】문-이과 구분과 과학교육의 두 문화

              사 회 :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 과학사및과학철학 협동과정 교수)

              발 표 : 송진웅 (서울대 물리교육과 교수)

              토 론 :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 내용요약

    1. 문-이과 구분 폐지의 배경

      * 현대사회 자체가 과학기술 중심 사회로 전환됨

        =>다양한 과학기술 관련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등장

      *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무식한 이공계 vs. 뺀질이 인문사회계

      * 사회적으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학의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 필요!

      * 개인적으로는, 모든 일상이 과학기술 관련 의사소통의 연속

        =>문과-이과의 양 날개를 모두 갖춘 시민의 육성이 기대됨!

    2. C. P. Snow의 "두 문화"

      * Snow 자신은 물리학자 겸 소설가 겸 행정가

      * 두 문화 간의 공통 언어의 부재가 문제점

      * 영국의 전통적인 교육의 조기 전문화에 대한 비판

        => 그 대안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교육의 장점을 제시

      * 지금은 더 많은 문화(?)

        => 인문사회, 문화예술, 연예스포츠, 금융경제, 과학기술 etc.

      * 경계넘나들기(Border Crossing)의 문제!

    3. 중고등 학교에서의 문-이과 문제

      * 현재의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을 하지 않음.

        =>하지만, 학교에서는 실제적으로 문-이과 구분이 실시됨.

      * 현재의 수능시험도 문-이과 구분을 하지 않음.

      * 오히려, 너무 많은 교과목을 동시에 학습하는 문제가 큼.

      * 교육과정이나 교과목이 아니라, 교육내용이 문제임.

        => 과학에는 역사, 철학, 민주주의 등이 없고, 역사, 사회,

           예체능에서는 과학(기술)을 전혀 찾을 수 없음.

      * 교육과정을 둘러싼 Stakeholder의 폐쇄성이 문제

        => 대개 과학교사, 과학교육학자, 과학자 들로만 구성됨.

    4. 대학에서의 문-이과 문제

      * 대학의 교양은 여전히 도구교과목에 편중 (국, 영, 수 …)

      *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으로 단과대학간, 학과간 벽이 높음.

        => 이공계는 편협한 전문가로, 인문사회계는 무능한 지식인으로

      * 통합전공, 학과이동, 계열변경, 간학문 전공의 정착이 필요

    5. 과학교육의 두 문화

      * 문-이과의 구분 문제는 과학교육의 두 문화와 관련됨.

        Pipeline적 관점 = 문-이과

        Humanism적 관점 = 통합교육

      * 보통교육으로서의 과학교육은 과학적 소양(SL)과 인간주의적 접근(HA)을 강조함.

        => 과학의 적합성(relevance)에 대한 철저한 확인이 선행되어야!

      * 새로운 과학교육의 모습에서는…

        => 맥락성(context)과  과학적 인간주의(Scientific Humanism)

    6. 결론

      * 현대사회는 문과-이과의 소양을 두루 갖춘 시민을 필요로 함.

      * "두 문화"의 간격은 (과학)교육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음.

         => 경계넘나들기를 학습할 수 있어야!

      * 현재의 교육과정, 수능시험 등은 문-이과 구분을 강요하지 않음.

         => 교육의 실제적 내용이 더 실질적인 문제임.

      * 문-이과 분리의 문제는 대학/대학원에서 더 큰 문제임.

         => 현재의 대학 시스템은 편협한 전문인, 무능한 지식인을 양성함.

      * 인간주의적 접근, 맥락성 등이 과학교육에서 절실히 필요함.

   

  ○ 토론 1 : 이중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 공학인문교육 등 과학과 인문학을 조화, 통합시켜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는 체계가 더 필요하며 두 문화간 활동을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 또한 과학에 인문학을 담아내는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지만 과학 전문인도 계속 양성해야 한다.

      

   ○ 토론 2 : 최무영 (서울대 물리학부 교수)

      * 현대는 과학 사회 이므로 인문학적 인재들에게도 과학적 사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과학문화연구센터 뉴스레터 12호 발행
제1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