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보도자료
제 목 |   제1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
작성자 |   관리자   (heretwo@postech.ac.kr)
작성일 |   2006년 10월 01일
첨부파일 1 |  
제1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hwp

 

제1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



□ 개  요

   - 일    시 : 2006년 7월 14일(금) 17:50~20:00

   - 장    소 : 포항공과대학교 무은재기념관 3층 307호

   - 주    제 : 과학과 창의성(Science and Creativity)

   - 진행순서 : 참가자 등록, 개회식, 환영사, 제1부 주제발표 및 토론, 제2부 주제발표 및 토론, 폐회식 등

   - 주요내용 : 과학교육적인 측면에서의 창의성과, 과학과 예술적인 측면에서의 창의성에 대한 주제발표 및 토론자 토론, 기타 참가자와의 종합토론 등

   - 주    최 : 과학문화재단, 과학문화연구센터

   - 후    원 : 과학기술부, 포항공과대학

   - 참석규모 : 경북도교육청 장학관, 영재교육관련 학생 및 교사, 학부모 등 50여명



□ 발표내용

  【제1주제】유대인의 창의성과 노벨상

              사 회 : 소흥렬 포항공대 교수

              발 표 : 이무상 과학문화재단 과학문화연구소장

              토 론 : 천태오 경북 과학교육원 원장

                      김득호 경북도교육청 과학산업교육과장


   ○ 내용요약 : 이스라엘과 한국의 공통점 및 차이점, 창의성과 유대인, 모든 분야에서 세계정산인 유대인들의 교육 특성, 역사를 바꾼 유대인, 유대인을 통해 본 한국 교육의 방향 등

       - 서 론 : 유대인들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미움을 가장 많이 받았던 민족이다, 유명한 인물로는 예수, 스피노자, 베르그송, 칼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아담 스미스, 프로이드, 하이네 등이 있으며, 유대인 기업들로는 인텔, 록펠러, 모건, 뒤퐁 등이 있다. 유대인의 교육방식은 ‘배움은 꿀처럼 달다’고 하는 것을 되풀이하여 체험하게 하며, ‘싫으면 하지 마라’ 단 하려면 최선을 다하라,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쌍방을 죽이지만, 개성을 비교하면 쌍방을 살린다, 일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어릴 때 충분히 놀게 하라, 친구를 선택할 때는 한 단계 높게 선택하라, 가족의 혈연을 중시하게 하고, 민족의 긍지를 심어준다 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 이스라엘과 한국의 공통점과 차이점 : 공통점으로는 1948년 같은 해 독립국임을 선포하였으며, 부모의 교육열이 열성적이고, 단일민족이고 단일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빈약한 천연자원과 우수한 인력자원을 지니고 있고, 민족 고유의 문자를 상용할 뿐 아니라, 민족 고유 언어로 개발한 워드프로세서를 가지고 있고, 좁은 국토 및 아직도 휴전상태 등 다양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차이점으로는 이스라엘의 경우 유대교라는 단일 종교를 가지고 있고, 지혜는 가정에서 지식은 학교에서 가르친다는 점과, 다양한 언어를 조기교육 시키는데 비해, 한국의 경우 다종교 국가이고, 여러 과목을 이수해야 하며, 지식위주의 교육을 시킨다는 점이다.

       -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 창의성은 다양한 재료로 만든 한정식과 같아서 독특하고, 재료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재료의 조합이 열쇠이고, 충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창의적인 사람인가 지식보다 지혜가 많은 사람들 또는 특정 분야의 대가들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업적을 바탕으로 새롭고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 감정표현을 잘하고 충동적이고,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공감각적인 경향이 강하고, 유머와 배짱이 있으며, 진화론처럼 혁신적인 사고의 전환을 가져오거나, 추진력이 있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업적을 이루며, 활기에 차 있고, 직관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고, 민감하며, 공감적인 사람 등을 말한다. 창의성에 다양한 정의를 살펴보면 고대의 정의, 프란시스 갤턴 남작의 정의, 칼로저의 정의, 폴 토렌스의 정의 등에서 볼 수 있다. 창의성이 나타나는 곳은 영재들 속에서, 어린아이의 순수함 속에서, 과학자의 자유로운 활동이나 발명품 속에서 나타나며, 어 떤 결과물이 독창적이냐 아니냐의 판단은 개인이나 사회에 달려 있고, 때로는 사후에 인정받기도 한다. 이러한 창의성에도 수준이 있는데 표현적인 창의성, 생산적인 창의성, 독창적인 창의성, 혁신적인 창의성, 급진적인 창의성 등이 있다.

       * 아이들의 창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토렌스 선언 :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추구하고 푹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최선을 다해 알고, 이해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연습하라, 다른 사람이 원하거나 기대한 것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마음껏 배워라,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교사나 조언자(대가)를 발견하라.

       * 어른들의 창의성을 증진하기 위한 토렌스 선언 : 자신이나 타인의 잘못한 것들에 대하여 관대하라,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깊이 사고하는 것을 즐긴다, 소수자의 한사람으로서 마음이 편할 수 있다, 열심히 일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사랑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동시에 창의적이기 위하여 배짱이 필요하다, 팔방미인이 되려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 최선을 다하는 창의적 도약에 두려움을 가지지 마라.

       - 모든 분야에서 세계 정상인 유대인들의 교육 특성 : 한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전문가 이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거의 바보 수준이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보어, 스필버그 등이 있다. 유대인의 특성을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비추어 분석하면 음악적 지능, 신체-운동학적 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언어적 지능, 공간적 지능, 대인관계 지능, 자기이해 지능, 자연탐구 지능 등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유대인의 영재교육의 핵심은 한국은 지식위주의 1단계 교육을 위주로 하는데 비해, 유대인은 2단계 혹은 3단계 교육을 위주로 한다. 세계적인 업적을 이룩한 각 분야 120명 영재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아주 어려서 영재활동을 시작했다는 것, 부모가 역할모델 또는 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 집안에서는 그 일이 다반사여야 한다는 것, 유아기․아동기․청년기 등 3단계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 엄청난 수련기간이 필요하다는 것, 자발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 희생적인 후견인 또는 현명한 조언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 역사를 바꾼 유대인들 : 유대인 노벨상 수상자 170명 중에는 노벨화학상 28명, 노벨경제학상 22명, 노벨문학상 13명, 노벨생리의학상 52명, 노벨평화상 9명, 노벨물리학상 46명 등이며, 이외에도 노벨상에 버금가는 각종 상을 휩쓰는 유대인들이나 금융․유통․학술․문화․정치․언론․영화․예술계 등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 유대인을 통해 본 한국 교육의 방향 및 결론 : 한국 교육에서도 유대인처럼 지혜와 지식을 둘 다 가르치고 토론하고 화합하는 문화를 길러야 한다. 한국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머리가 좋으며 이는 외국의 연구 자료를 통해서도 밝혀진바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라, 잘한 일에 초점을 맞추고, 벌을 주지 말고 시간을 주어라, 내일의 한국의 미래는 바로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달려있다.

   ○ 논평문 1 : 천태오 경북 과학교육원 원장

       - 탈무드에서는 ‘사람은 왜 공부를 하려고 하는가? 왜 학력을 높이려고 하는가? 에 대해 그 궁극적인 목적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탈무드가 말하고 있는 ’집중이란 무엇을 말하는가?‘를 항상 생각하며 교직생활을 해왔다.

       - 21세기 들어서면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슈들 - 즉, 디지털이니 글로벌이니 인터넷, 지식정보화 또는 지식창조니 하는 혁신적 용어들은 모두가 ‘창의성’이라는 공통적 성질을 담고 있고, 그것에 의해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우리 교육의 변화 물결 속에서 창의성 교육이라는 학습효과를 통해 교육실천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 우세들을 교육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 창의성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창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창의성은 이미 우리들 귀에 익숙한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정작 창의성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문 실정이다.

       - 우선 이무상 교수의 ‘유대인의 창의성과 노벨상’이라는 발표는 위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며, 창의성의 본질과 창의성의 탄생과정에 대해 사례를 통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향후 이 분야의 지속적인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 이무상 교수의 논거를 짧게 요약해 보면, 첫째, 유대인은 지구상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미움과 질시를 받았던 민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유대인은 2000년 동안에 걸친 유목생활과 600만 명의 홀로코스트 대학살 등 수많은 고난의 역사에 묻어 있는 경험과 체험을 통해 형성된 ‘종교문화’와 ‘깊이 생각하는 사고의 습성’을 가정교육에서 이루고 있다. 오늘날 소위 ‘유대인의 창의성’을 일깨우는 기본기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 둘째, 유대인들은 언제나 끊임없이 적대자들을 만나는 운명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절실한 요구와 인내심을 길러 옴으로써, 유대인들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 셋째,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진 채 항상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얻은 교훈으로서 고된 훈련이 유대인들을 늘 새롭고도 강하게 만들어 갔다.

       - 마지막으로 이방인으로서 사고의 측면을 여러 갈래로 생각하게 하는 환경에 처함으로써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넓히고 깊게 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 유대교라는 종교를 근본으로 한 가정교육, 민족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절실한 요구, 사고를 깊이 하는 습성, 인내심, 독서와 여행을 통한 홀로서기와 고된 훈련이 그들의 역사와 문화 속에 깊이 깔려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다. 아울러 본 논평자는 토론식 교육방법 및 실험․실습을 중심으로 하는 일관된 교육정책이 오늘날 과학기술뿐 아니라 정치․경제․언론․영화 및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대인들을 Best of Best가 되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역설한 발표자의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

       - 지금까지 이 분야의 다양한 연구 성과에 의하면 창의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며, 또 어느 순간에 돌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그것은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적이고 다양한 각도에서의 노력에 의해 서서히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창의성은 우리에게 꾸준한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 논평문 2 : 김득호 경북도교육청 과학산업교육과장

       - 이스라엘도 건국 초기에는 ‘교육의 평등’에 중점을 두어 영재교육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초반부터 교육부 안에 영재교육과를 설치하고 국가수준의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획일적인 평준화 교육을 강화하던 때와 일치한다.

       -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영재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1981년 구미고등학교를 영재교육 시범학교로 운영하였으나 그 결과가 미미하여 영재교육을 미루어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 대통령령으로 영재교육진흥법(2001. 1. 28 법률 제6212호)을 제정하여 국가 수준의 영재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 현재 이스라엘에는 국가의 지원 하에 특수학교나 영재교육센터로 불리는 12종류의 다양한 영재교육기관을 두고 초등학교 2-3학년부터 각 반의 상위 3% 안에 드는 모든 학생은 의무적으로 영재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별도의 자격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에게도 영재교육을 시키고 있다.

       - 우리나라에서는 영재교육기관의 설립 및 설치령(2002. 4. 18 대통령령 제17578호)에 따라 영재학교, 영재교육원(대학부설 포함), 영재학급(공동 영재학급)을 설치하고 주로 수학, 과학, 영어, 정보 관련 분야의 영재들을 영재기관별로 선발하여 교육하고 있다.

       - 그런데 이스라엘에서의 영재란 우리가 생각하듯이 학습지능만 높은 아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특정한 분야(예를 들어 스포츠, 승마, 컴퓨터 등)에서 뛰어난 재주를 가진 아이를 영재라 하는데 이것은 최근 미국 등지에서 호응을 받고 있는 ‘다중지능이론’과도 일맥상통하는 관점이다.

       - 우리나라에서는 영재교육기관별로 대부분 논리적 추론 능력 및 영재 특성조사를 통해 영재를 선발하고 있다. 4개 영재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보면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여 자신의 관심사를 스스로 발견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학제간 접근’을 통하여 단순한 기술자나 과학자가 아닌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 토론요약 : 소흥렬 포항공대 교수

       - 지식과 지혜를 구분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지혜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소흥렬)

       - 한 분야의 프로가 중요하고, 기회를 평준화해야지 능력을 평준화해서는 안 된다 즉 여러 가지로 줄을 세워야지 한가지로 줄을 세워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축구, 바둑 등 따라서 영재교육은 잘하는 것을 칭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이무상)

       - 창의성교육과, 인성교육 측면에서의 다중인격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에 대해 설명을...,(임경순)

       - 지식과 지혜의 비중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우리나라 국가 교육에서는 고등학교까지가 지식을 더 강조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어떠한 지혜양성 정책이 바람직한지 그리고 있는지에 설명을 좀...,(방청객)

       - 가정교육이 중요하다, 특히 일례로 주장에 대해 양보하지 않도록 하는 인성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아울러 한 분야 학문에서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 즉 아인슈타인도 수학․물리뿐만 아니라 철학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업적이 가능했던 것처럼 타 학문에서 응용하고 모방함으로써 세계적인 발견이나 발명이 나오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한 분야만을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소흥렬)

       - 한 분야에 집중하고 여타 관련 과목도 신경 써야 한다. 즉 초․중․고 때 한 분야에 집중하여 대학에서 골고루 섭렵하도록 해야 한다.(이무상)

       - 지혜로 하는 강의와 지식으로 하는 강의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사고하는 문제에 대한 숙제 및 사고에 대한 평가는 논리적으로 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창의성은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극성에 달려 있고, 갈 방향을 가르치는 것 즉 지혜로 해야지 무조건 가르치는 것 즉 지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토론을 양성하고 주장을 꺾어서는 안 된다.(소흥렬)



  【제2주제】예술, 과학 그리고 창의성

              사 회 : 소흥렬 포항공대 교수

              발 표 : 양해림 충남대 철학과 교수

              토 론 :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

                      이기흥 한남대 박사


   ○ 내용요약 : 예술과 과학의 패러다임, 예술과 과학의 차이, 예술과 과학의 접맥 그리고 창의성 :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등

       - 들어가는 말 : 예술과 과학은 어떻게 만날까? 이제껏 예술과 과학은 서로 상충된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어왔다. 예술은 누구나 감상할 수 있지만, 과학은 소수의 재능 있는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또한 보통 예술가와 과학자들은 서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최근의 ‘왼쪽 뇌, 오른쪽 뇌’ 가설이 이러한 관념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 가설에 의하면, 과학자들은 논리적, 분석적이기 때문에 뇌의 왼쪽을 주로 사용하고, 직관과 상상력의 자리인 예술은 예술가에게 더욱 발전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은 인간의 합리적인 활동의 전형이 라고 보는 반면에, 예술은 정서와 연관된 것으로서 개인적이거나 상호 주관적인 느낌에 근거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설명은 예술과 과학 사이의 지속성보다는 차이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흔히 예술에 있어서는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예술이 진리와 연관되는 것은 우연적이거나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예술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예술은 과학처럼 객관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단적으로 비과학적이다. 따라서 최소한 현재 논의되는 예술과 과학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동이한 선상으로 놓는다는 것은 그리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은 철저히 과학적이어야 하고, 예술은 이른바 예술적이어야 한다. 그러면 과학과 예술 그리고 창의성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특히 왜 예술과 과학이 만나야 하는가? 이것은 예술과 과학이 한참 동떨어져 있다는 반증인가? 이러한 물음을 통해 예술과 과학, 그리고 창의성과의 대화를 시도해 보고자 한다.

       - 예술과 과학의 패러다임 : 근대 이후로 과학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 생각 했던 것과는 다르게 지난 세기 후반에 보여주었던 여러 논의는 과학을 더 이상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 과학이 비합리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자연과학조차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의 비과학적 모습과 예술의 비과학적 성격만 가지고는 과학과 예술의 유사성이나 또 그 둘 사이의 어떠한 밀접한 관계를 단정지울 수 없다. 20세기 들어 많은 예술가들은 예술과 과학의 결합을 시도하였다. 프랑스의 작가 폴 발레리는 ‘과학과 예술은 거칠게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과 예술은 떨어질 수 없다’고 언급한다. 또한 디지털 혁명을 선언한 네그로폰네는 비잉 디지털의 저서에서 ‘싹터 오르는 멀티미디어는 기술과 인간성, 과학과 예술 사이의 격차를 메우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컴퓨터간의 인터페이스가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만큼이나 쉬워질 경우에만 디지털 시장은 열릴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21세기의 과학기술의 예언자인 맥루한은 이를 일컬어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유명한 명구를 남겼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은 과학과 예술을 결합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커뮤니케이션이 결합한 비디오 아트의 영역을 개척해냈다. 2000년부터 서울시가 매년 벌이는 ‘미디어-시티 서울’은 디지털 혁명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부응하고자 하는 새로운 예술장치로서 시민들의 미디어에 대한 복합적인 이해와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2002년 이 모임의 심포지엄에 참석한 장 보드리야르는 ‘21세기는 이미지(감성+이성)가 현실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즉 근거없는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의 이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흘러간 내용이 아니라 향후 21세기 가상시대를 미리 예상해 볼 수 있는 이론이다. 오늘날 비디오, 애니메이션, 컴퓨터게임, TV는 점점 사람들을 영상 이미지의 세계로 끌어 모으고 있다. 이제 안방, 거리, 직장, 초등학교, 중등학교는 물론 대학교, 거리, 직장 어디에서나 문화산업의 영역에서도 우리의 삶은 어느 부분에서도 이미지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30년 전에 미디어 문화의 출현을 미리 예견한 보드리야르는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예술을 논의하는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 예술과 과학의 차이 : 예술과 과학의 관계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술과 과학에서의 창조적(창의적) 과정의 유사성과 차이성에 주목하면서 분석하고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것은 예술에 적용한 것으로서의 창조의 개념과 과학에 적용된 것으로서의 발명의 개념이 지닌 것은 그렇게 직접적인 관련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은 콜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했다고 말했을 때, ‘있는 것’을 발견해 내는 것은 아니다. 과학은 구성이며, 다른 말로 하면 창조이다. 같은 방식으로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작위적인 것은 아니지만, 인간정신의 피조물인 개념들을 연결한 것이다. 예술 역시 구성․창조(창의)일뿐 아니라 발견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시대의 예술물 사이에 발견되는 유사성들은 비슷한 원형의 발견을 보여주고자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인간의 마음과 손이 이루어낸 공동의 작업일 것이다. 형태들과 색채들의 어떤 상상적인 배열들을 다른 배열들과는 다르게 ‘옳다’고 보는 보통의 경험의 감정은 작위적이지 않고 발견될 수 있는 무엇인가에 상응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예술가들의 형태들은 상상해 내고 ‘옳다’고 느껴질 때까지 작품들을 수정해 나가는 절차는 상상적인 실험들과 비슷하다. 왜냐하면 모든 과학자들은 그들의 사고가 가장 깊은 수준들에서는 비언어적임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과 과학자들은 ‘고전적’ 또는 아폴로적 아니면, 낭만적 또는 ‘디오니소스적’으로 구별될 수 있다. 둘째로, 과학적 개념들에 비추어 예술을 점검하거나, 과학자들의 눈을 통해서 예술과 과학이 대조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과학적 속성들의 직관적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보일 수 있다. 예술사에서 예술이 과학적 이념을 따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상이한 현상으로 변하였다. 셋째로, 과학적 개념들이 예술을 촉발하거나 예술을 위해 필요한 구조를 제고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될 수 있다. 그 반대로 에술이 과학적 탐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이 예시될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다. 우리가 역사로서의 미적 가치를 올바로 알기 위해서는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으로 이해해야 하며, 전체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직관적이며 미적인 방법을 택해야 한다. 과학과 예술은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내면세계로부터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이점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컴퓨터가 도구로서 미디어로서 예술행위자로서 영상예술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 예술과 과학의 접맥 그리고 창의성 (백남준과 비디오 아트) : 주지하다시피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기존의 영상형식 구조를 깨는 새로운 형식을 지니고 있다. 백남준의 작품은 자본주의 꽃이라고 불리는 광고와 결합한다. 자본주의 꽃인 광고에 의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지니고 있는 비판정신은 흡수되어 버린다. 그의 특유의 직관과 도발성, 그리고 탐구정신이 드러나는 이대의 작곡과 행위 작업에는 당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반문화 사상이나 대중매체에 대한 동시대 지식인들의 태도가 반영되어 있다. ‘모든 기술이 인간화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듯이, 예술도 인간화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 한다’.는 이 선언적 경구는 백남준의 예술을 잘 대변하다. 1969년 미국 뉴욕에서 발표 당시 매스컴의 시선을 집중시킨 백남준의 이 선언, 즉 인간화한 예술론은 ‘삶과 예술의 괴리’, ‘예술과 관객의 비소통적 체계’를 특징으로 하는 20세기 주류에 대한 공격이자 투쟁포고문이었다. 또한 참여와 소통은 그가 지속적으로 해 온 예술대중주의 철학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백남준은 과학을 예술에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꾸준히 찾았다. 그 일환으로 2000년대부터는 레이저로 작품을 만들었다. 레이저 관선은 매우 선명할 뿐 아니라 먼 거리를 통과해도 흐려지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백남준은 이러한 레이저의 특성을 활용해서 넓은 공간에 떠있는 듯 한 기하학적 모양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 맺는말 : 선의 원근법은 회화의 수학화를 이끌었고 훗날 갈릴레오는 자연의 기하학화를 내세우며 과학의 수학화를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17세기의 뉴튼, 케플러, 갈릴레오, 미켈란젤로 등을 비롯한 과학혁명은 19세기 전반까지 이난 삶의 정치․경제․사회적 차원에서 변혁을 가속화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라는 획기적인 사건이 현실화하였다. 특히 현대과학은 예술의 형태와 개념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개념까지도 만들어 냈다. 예술과 과학의 차이는 어떠한 것이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하는가에 의해서 위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체계의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술가들은 정서를 자극시키려고 노력하지만, 과학자들은 논리적으로 납득시켜야 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예술은 ‘왜’를 탐구하지만,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야 한다. 창조(창의)적인 예술과 과학을 만드는 데는 동기, 오랜 기간에 걸친 훈련, 추진력,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강도가 높은 긴장과 실패에 대한 불안이 수반된다. 즉 과학적 창조(창의)와 예술적 창조(창의)는 동일한 과정이나 동일한 능력에 기반 하지는 않지만,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서 있는 전통을 충분히 습득하고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하고 훈련하고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단서를 계속 발전시키는 것은 예술과 과학이 서로 공통적이다. 또한 예술이 내면의 세계만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듯이, 과학도 외부의 자연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도전적인 경쟁자는 인터넷을 서핑하는 청소년을 비롯한 20, 30대 젊은 층이다. 지금 그들에게 누가 예술가이고 과학자인지는 중요한 대상이 아니다. 현재 과학과 예술의 엄청난 정보의 홍수는 뇌의 양쪽에 똑같이 자극을 준다. 논리에 더 많이 관여하는 왼쪽 뇌의 사용은 유연하고 단편적인 사고 양식 때문에 약간은 쇠퇴할지 모른다. 반면에 상상력의 근원인 오른쪽 뇌는 다가올 사회에 더욱 발달될 것이다.


   ○ 논평문 1 : 이상엽 울산대 철학과 교수

       - 백남준의 사례를 들어 창의적인 정신이야말로 현대 예술과 현대 과학을 융합해 새로운 예술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역설하는 논문이다. 그리고 본 논문의 숨겨진 주장 중 하나는, 예술과 창의성이 창의성 속에서 만나 새로운 창조적 예술세계를 열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 2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예술이건 과학이건 자연과 세계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또는 인식)하려고 했고 이점에서 볼 때 사실상 질적인 차이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편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코페르니쿠스 등의 과학자들을, 다른 한편으로 지오코, 브르넬스키, 알베르티,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2장 끝머리에 폴 발레리, 네그로폰테, 맥루한, 보드리야르, 백남준 등을 언급하면서 다시 과학과 예술이 결합되는 시기가 도래했음을 서술하고 있다.

       - 3장은 예술과 과학의 차이성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우선 저자에 따르면 ‘과학과 예술은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둘은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는 자연의 세계와 인간의 내면세계로부터 질서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상접보다 유사점이 더 많다’고 한다. 과학과 예술 사이의 차이는 ‘어떤 것이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하는가에 의해서 위계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체계의 차이’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과학이 예술보다 더 높은 자연인식을 가져다준다거나 또는 그 역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이 서로 다른 기호를 사용해 자연을 인식하기 때문에 여기서 과학과 예술의 차이가 나타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예술 사이에는 결국 그리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 4장은 예술과 과학이 창의성을 매개로 다시 결합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가 볼 때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백남준이다. 백남준이야말로 미디어 테크놀로지, 레이저 등 ‘과학을 예술에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꾸준히 찾았던 인물이고 동시에 자유와 창의성 속에서 과학과 예술을 접목시킨 인물이라는 것이다.

       - 5장은 ‘과학적 창조(창의)와 예술적 장조(창의)는 동일한 과정이나 동일한 능력에 기반하지 않지만,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서 있는 전통을 충분히 습득하고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하고 훈련하고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새롭고 과감한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단서를 계속 발전시키는 것은 예술과 과학이 서로 공통적이다. 또한 예술이 내면의 세계만을 성찰하는 것이 아니듯이, 과학도 외부의 자연을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예술과 과학은 앞으로 더욱더 상호 결합해 혼성화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예술 세계가 탄생할 것임을 예견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 현재에도 자연과 세계에 대한 순수 인식의 측면에서 예술과 과학의 유사성을 논할 수 있는가? 이렇게 본다면 기술과 예술은 쉽게 말해서 ‘감추어져 있는 가능성’을 새롭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시말해 새로운 창조의 측면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이러한 존재론을 바탕에 둘 때 예술가는 진정으로 창조적인 상상력을 통해 기술적․예술적으로 세계를 창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 논평문 2 : 이기흥 한남대 박사

       - 과학과 예술 간의 공통점보다는 그 차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견해를 논자는 비판․수정코자 한다. 본인은 양해림 교수의 논문에 대하여 5가지 측면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논평을 하였으며, 그 내용의 대부분은 양해림 교수의 관점에 덧붙여 이상엽 울산대 교수 등이 앞서 말한 바에 대한 큰 틀을 구성해 본 것이다.

       - 아울러 ‘유대인의 창의성과 노벨상’ 등에서 너무 열띤 토론을 한 관계로 본 심포지엄 시간이 너무 경과한 점이 없지 않아 텍스트를 통해 보고 이해하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 토론요약 : 소흥렬 포항공대 교수

       - 백남준도 포스트모더니즘 조류에 닿아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단절을 통해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내자라는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과학과 기술의 만남은 필요하다. 또한 사람들은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데 어느 한 쪽만 가지고는 제대로 된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본다. (소흥렬)

       - 피아제의 ‘스키마’ 측면에서 예를 들면 동물원 ‘늑대’를 개라고 할 때 ‘늑대’와 ‘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들어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볼 수 있는데 과학은 실험과학과 이론과학이 있는데 포퍼의 실험과학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창의성’이란 많은 경험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는 있으며, 아울러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다른 경험, 다른 느낌, 다른 생각 즉 논리가 다른 경우가 있을 때 내적인 변화가 올 수 있는데 과학도 예술과 같은 부분에서의 탐험이 창의성에 도움을 줄 것이다. 따라서 과학이 기술화되고 예술이 기술화 된다면 논란이 없어지지 않을까? (이기흥)

       - 오늘의 주제는 과학에 대한 지혜, 과학에 대한 예술이 논점이 되는 것이지 기술은 아니지 않느냐? (소흥렬)

       - 오늘 이 토론은 소크라테스적인 측면에서 이성적인 분석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참가자 1)

       - 과학과 예술은 한 몸이라고 보여지는데 차이점이나 분리점 보다는 공통전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타당한 것은 아닌가? (참가자 2)

제2회 과학문화심포지엄 개최결과 보고
2006년 한국과학사학회의 추계 학술대회